블로그 글은 조계종 출판사에서 발간한 '불교 입문' 2017년 개정판의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개인의 감상이 일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면 서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행복을 좇으면서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을 하나씩 갖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한 결과가 이루어지면 뿌듯해 한다. 그러고 나면 삶의 목표는 조금 더 커지고 우리는 좀 더 커진 행복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이렇다. 게다가 행복의 조건은 늘 변하게 마련이라 열심히 노력해서 그 조건을 채운다 해도 죽을 때까지 끝내 만족하지 못한다. 단 한 번도 진실로 행복을 누려 보지 못한 채 행복의 조건만 채우다가 삶을 마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행복하려고 애를 쓰는지, 그렇게 해서 잠시 맛보는 행복은 왜 영원히 만족감을 안겨 주지 않는지, 인간은 어떻게해야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고, 두려움이나 불만족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사는 대로 살면서 세상이 제시하는 조건을 좇으며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남의 인생을 살다가 스스로의 삶을 마치게 된다. 게다가 남을 따라 사느라 이런저런 업을 짓소, 그 업이 불러오는 과보는 자기 자신이 받는다. 그러는 가운데 울고 웃고 정신없는 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우리들 보통 사람의 삶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인데 단 한 번도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진정으로 생각해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지금의 삶에 진정한 가치를 담기 위해 깊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부질없거나 허무하지 않다. 세상살이의 고통과 즐거움에 진지한 고민이 더 해지고 깊은 사색이 실렸을 떄 인생이 알차게 꾸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덧없는 인생에 진정 귀한 가치를 심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종교다.
인간의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그 해결이 종교의 영역이다. 종교는 모든 것이 그 가치와 의미를 잃었을 때, 그 상실감과 허무함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라든가 사랑하는 연인이나 자식과 영영 헤어졌을 때, 평생을 바쳐 이뤄 놓은 것이 일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을 때,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돈이나 명예, 학문 등 세상의 그 어느 것에서도 만족과 해답을 얻지 못했을 때 우리는 종교를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최고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마루 종자를 써서 종교라고 일컫는다.
사람들에게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고, 마음의 평화와 지극한 행복을 안겨 주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메세지를 전해 준다. 종교 중에는 신을 매개로 하는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가 있다. 불교는 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지만, 신에게 의존한다고 인생의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 진리를 통찰하고 진리에 맞게 실천 수행하며 살아갈 때, 고통으로부터 해탈한다. 구원의 주인공은 진리를 자각한 자기 자신이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의 손길로 우리의 눈을 뜨게 해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 주며 그 길을 잘 따라갈 수 있게 이끌어 주고 도와주며 두려움을 없애 주는 역할을 한다.
부처님을 만나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일은 네 단계로 나눠진다. 신해행증. 믿고 이해하고 행하고 성취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이롭다. 하나는 자신에게 이로움을 가져온다는 측면이다. 자신을 잘 단속하여 행복과 발전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서로 이로움을 가져온다는 측면이다. 타인을 떠나 홀로 존재하는 삶은 없다. 모든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사는 존재임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계는 '훈련하다', '습관 들이다' 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실에서 파생된 말이다. 계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 수행이며 언제나 마음이 선을 향하고 악을 멈추도록 길들인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셋째, 그릇된 성관계를 갖지 말라.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술에 취하지 말라.
초기경전인 '대반열반경'에는 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다섯가지로 설명한다.
계를 깨면 다섯 가지 위험이 따라온다. 무엇이 그 다섯가지 인가? 첫째, 계행이 나쁘고 계를 깨면 그 사람이 게으르다는 것을 보여주니 그 결과로 재물을 잃는다. 둘째, 악명이 퍼진다. 셋째, 어떤 모임에 들어가도 자신감을 잃고 눈치를 본다. 넷째, 계를 깼기 때문에 어리석은 상태로 세상을 떠난다. 다섯째, 죽은 뒤에 처참하고 불행하고 파멸을 부르는 곳인 지옥에 떨어진다.
반면 계를 잘 지키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무엇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 계를 잘 지키면 게으르지 않게 되니 그 결과 큰 재물을 얻는다. 둘째, 훌륭한 명성을 얻는다. 셋째, 어떤 모임에 들어가도 두렵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으며 당당해질 수 있다. 넷째, 어리석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난다. 다섯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난다.
오계의 항목은 불교를 믿는지 믿지 않는지에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켜야 할 내용이다. 특히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이 다섯 가지 계율을 받들어야 한다. 살생과 폭력, 갈취와 착취, 거짓말, 부적절한 성관계와 같은 일은 상대방은 물론 상대방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남이 고통스러워 하는데 과연 내가 편안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음주와 관련된 계율도 마찬가지다. 과음으로 인해 폭력을 쓰고, 급기야 생명을 해치게 된다면 큰 악업이다. 재가자로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술을 적당히 마실 수 있다지만 과음을 하여 판단력을 잃고 상대방에게 큰 고통은 안겨 주진 말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자가 지켜야 하는 규범을 계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계와 율은 그 성격이다. 다르다. 계는 바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발적 다짐이요,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을 말하는 반면, 율은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조항이다. 그래서 율을 어길 경우에는 어떤 제재나 처벌이 따른다. 하지만 제재나 처벌이 있든 없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서 수행하기로 맹세한 사람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윤리 도덕을 지켜야 함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힘써 행하여
제 마음 스스로 맑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법구경 -
경전에서는 선행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 역시 착한 업이라고 한다. 현재 내가 취하느 행동이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지를 잘 헤아려서, 해를 끼치는 행위라면 당장 그 일을 멈추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선행이란 나와 남을 모두 위하는 것이다. 착한 업, 즉 선업 중에서도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이 말로 짓는 업이다. 말이라는 하는 데 특별히 힘이 들지 않아서 무심코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마디 말이 상대방에게 큰 힘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비수가 되어 큰 상처를 주는 경우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서로를 갈라놓기 위해 헐뜯어 이간질하는 말 대신 살리는 말, 부드러운 말, 화합하는 말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향기로운 불자의 모습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지만 소중한 실천이다. 상대방에게 충고할 때도 그것이 진정 상대방에게 이로운 충고인지, 상대방이 충고를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본 다음에 말해야 한다고 부처님을 말씀하신다. 적당한 때를 아는 것이 지혜다.
선업에는 즐거운 과보가 오고 악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른다. 인과응보.
몸과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지르면 그것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 일입니다. 아무리 자신을 아끼고 귀하게 여긴다고 말해도 실제로는 자신을 조금도 보호하지 않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쁜 벗은 친구에게 악한 짓을 함부로 저지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쁜 벗이 친구에게 하듯, 악업을 저지르는 것도 똑같습니다.
반대로 몸과 입과 뜻으로 선행을 하면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실제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착한 벗은 친구에게 이로운 일을 권하고 행합니다. 그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시를 사랑한다면 선행을 해야 합니다.
- 잡아함경 -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마음으로 늘 착하고 옳은 것을 생각하는 이유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생명은 본래 자신의 안락함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업을 짓는 다는 것은 스스로 괴로움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악업을 멈추고 선업을 적극적으로 지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자신과 세상의 행복을 불러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